Educational Programs
YÉOL’s educational programs on traditional Korean culture include the YÉOL Lecture for non-Koreans that is conducted in English, domestic and overseas field trips to historical sites, museum tours, and the historical walking tour of Seoul. Our educational programs are updated every year. To encourage young people’s involvement in traditional Korean culture, YÉOL provides the “Young YÉOL Program” that includes cultural heritage trips and lectures.
This program is about learning and experiencing Korea’s environment, history, and culture by traveling through beautiful nature to the historical sites.
2010 가을 답사 (2010 Fall Cultural Excursion - Suwon)작성일 2010-09-16
September 16, 2010
수원융건릉 - 용주사 - 이영미술관 - 화성 성곽 – 화성 행궁(Suwon Hwaseong Fortress)
‘정조의 효심’을 깊이 느낄 수 있었던 가을 답사는 그 첫걸음을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잠들어 있는 융릉에서 시작했습니다. 정조는 참혹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전국3대 길지의 하나인 화산으로 이장하기 위해 이미 그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땅을 실제 금액의 몇 배를 주고 수용하였고 이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수원화성을 축성했다는 정해득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자식으로서의 효심과 군주로서의 자애로움을 두루 갖춘 성군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고종때(1898)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나중에야 왕릉으로 격상되었지만 조성 당시에도 이미 무인석, 문인석, 장명등, 병풍석, 난간석 등 하나하나에 온갖 정성을 들여 왕릉에 견주어 손색이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조 자신의 능은 풍수에 상관없이 그저 아버지 가까이에 묻어달라는 유지를 남겼고 순조는 이에 따라 융릉 가까이에 건릉을 조성하였습니다. 왕릉이라기보다는 아픔 많은 가족의 묘이기도 한 융건릉에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은 정조의 아픔이 아직도 머물러 그대로 우리에게로 전해져오는 것 같았습니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기도처 용주사로 가는 길에는 끝없이 쳐져 있는 휀스가 지난 폭풍(곤파스)에 넘어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용주사에 도착하여 주지스님의 설명으로 이곳은 예전부터 융건릉 능역인데 주택공사에서 15층짜리 아파트를 짓기 위해 수용한 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효의 메카라 할 수 있는 곳이고 조선왕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므로 능역을 복원하고 보존하며 정조대왕의 뜻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발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수긍되면서도 아파트도 아니요 올바른 방향이라 해도‘개발’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이 용주사 뜰에 가득 피어 있는 구절초를 보며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이영미술관에는 소박한 점심이 준비되어있었습니다. 관장님 사모님이 차려주신 야외 식탁에는 직접 담그신 장으로 맛을 낸 국수와 보쌈, 싱싱한 토마토와 야채 그리고 진한 막걸리도 있었습니다. 넓은 대지 위에 지어진 미술관 마당은 산책하는 곳곳마다 세심한 손길이 느껴져 마음이 여유로와졌습니다. 박생광과 전혁림 화백의 그림과 젊은 현대작가들의 작품설명을 직접 들려주신 관장님과 사모님에게서는 훌륭한 화백들의 후원자로서 작품의 탄생에 함께한 자부심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화성을 둘러보았습니다. 시내 한가운데 있어 수원 시내를 차를 타고 지날 일이 있으면 늘 겉으로만 보게 되었던 그 곳 화성을 드디어 걸어본다고 생각하니 맘이 들떴습니다. 화성은 사도세자의 능이 조성된 화산부근에 있던 고을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는데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시작이 되었지만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곳으로 수도 남쪽의 국방 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정약용이 발명한 거중기를 비롯하여 새로운 기술들이 도입되어 지어졌는데 이에 동원된 백성들은 그 전과는 달리 무료로 노동을 제공하지 않고 임금을 받고 일하였다고 합니다. 축조 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1975~1979년까지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 궤’에 의거하여 대부분 축성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였습니다. 우리는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부터 북문인 장안문까지 걷고 암문도 지나가보고 방화수류정에 앉아 시원한 바람도 쐬며 수원 시내를 바라보기도 하였습니다. 가까이서 본 성곽의 돌 쌓은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은 신기한 예술작품이었습니다.
정조와 후대의 국왕들이 능행차 때마다 머물렀던 곳이고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치러진 효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한 조선시대 최대의 행궁인 화성행궁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습니다. 화성행궁은 일제침략기에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되었으나 발굴조사 및 복원정비사업을 통해 조선시대 행궁의 모습이 재현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연속극 ‘대장금’이 촬영된 곳이기도 한 이곳에는 사도세자의 뒤주 체험장이 있어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